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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간 전 눈에 띄는 표기 하나가 보도되었다. 지난 4월 어느 일기 자정 나절 복판 강변북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회사원이 택시에 치였다. 문제 직후 도로에 쓰러진 회사원은 뒤따라오던 차량들에 차례로 치여 착상 현장에서 5.5㎞나 떨어진 곳에서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맨처음 사고를 낸 택시기사는 붙잡혔지만, 인제 밖주인 피해자를 무참하게 들이받은 다른 차량들은 찾을 생령 없었다. 사고의 목격자들이 10여 명에 달했지만, 캄캄한 밤에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라 아무도 차량 번호판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경계 달여의 시간이 흐른 이후 마지막으로 경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면수사를 진행했다. 너 변제 목격자 중급 어떤 명이 용의차량 중간 계한 대의 차종과 색상, 그리고 차량번호 네 자리를 요연히 기억해냈다. 경찰은 목격자가 진술한 단서를 토대로 등록차량을 검색, 용의자를 검거할 행운 있었다.

간경 투도하다 이같이 최면수사에 따른 범인 검거가 갑자기 늘고 있는 상황이다. 줄줄이 소아 성폭행범이 최면수사에 의해 덜미를 잡히는가 하면 범죄자와 우연히 마주친 목격자들의 최면에 의해 범인 몽타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최면수사란 퀴즈 즉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충격으로 범죄상황을 떠올리지 못하는 목격자나 피해자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수사기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7년 범인의 차량을 본 목격자에게 최면으로 차량번호를 기억하게 어째 범인 검거에 성공함으로써 최면수사가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최면의 역사는 현실 만만 근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내 이집트 유적이나 기원전 10세기경 그리스 조각에서도 사람을 최면상태로 유도하는 모습이 나타날 정도. 노형 다음 18세기 오스트리아의 숙고 프란츠 안톤 메스머에 의해 근대 최면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때 최면을 시인 치료에 적용했던 메스머는 명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사람의 몸 안에 ‘동물자기(動物磁氣)’라는 에너지가 충만해 있어 이를 통해 질병을 고칠 생목숨 있다”고 주장했다. 최면술을 뜻하는 ‘메스머리즘(mesmerism)’은 메스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와 같은 메스머의 동물자기설은 19세기 중반 영국 사고 제임스 브레이드에 의해 새롭게 다듬어진다. 브레이드는 최면을 “인공적인 유사 수면상태”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메스머의 ‘자기설’ 대체 ‘최면술(Hypnosis)’로 이름을 바꾸었다. 즉, 잠을 부른다는 최면(催眠)이란 용어는 브레이드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도 최면을 잠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반면에 최면 상태는 잠과는 무관한, 의식과 무의식의 겨를 상태다. 최면이 수면 상태가 아닌 것은 뇌파를 측정해보면 명확해진다. 최면시의 뇌파는 수면상태와는 굉장히 다르며, 일반적인 각성 상태와 비슷하다. 브레이드도 장래 ‘최면이 수면상태’라는 자신의 주장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이를 다른 이름으로 바꾸려하기도 했다.

최면에 대한 편견은 이뿐만이 아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최면상태에서 전생을 기억하게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하는 마술쇼와 같은 최면술이 자주 등장한다. 도리어 최면상태에서 술술 풀어내는 신기한 전생의 기억들은 사실이 아니다. 전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환상이다.

최면을 유도하는 이가 최면에 걸린 사람에게서 나온 환상이나 거짓기억들을 사실이라고 맞장구치면서 그것을 전생기억으로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거짓기억이나 환상은 개인에 잠재된 소망과 평소의 생각, 형이상학 등에 의해 만들어진다. 정통 최면의학계에서도 전생기억은 기억이 아니라 환상이라는 견해를 간명히 하고 있다.

그럼 최면은 정말 무엇일까. 어떻게 해서 한밤중에 동시 스쳐본 경계 달 전의 차량 번호를 떠올리게 최면 하고, 우연히 마주친 낯선 범인의 인상착의를 매양 그려낼 성명 있을까.

진짜로 목격자가 거연히 본 차량번호나 범죄자의 얼굴은 무의식에 영역에 찰나 상황이 필름처럼 기록되어 있다. 도리어 그것이 골통이 안의 어디에 있는지를 의식의 세계에서는 알지 못한다. 최면은 소득 무의식의 기록을 식전 세계로 끄집어내는 데 이용하는 방법이다.

즉, 무의식의 세계에 녹화된 부분을 찾아서 VTR에 넣고 차차로 슬로비디오로 보듯이 이녁 장면만을 또렷하게 기억해내게 하는 것이다. 최면에 걸린 사람들은 최면을 거는 사람들의 지시에 따라 리모컨을 조정하듯 과거의 특정 원서 속으로 조속히 이동하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사람의 인식은 언제나없이 주변인식과 초점인식 사이에서 분주하게 왔다갔다한다. 그렇기는 해도 최면 상태에 들면 주변의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는 주변인식은 적어지고 하나의 일에 몰두하는 초점인식은 증가하게 된다. 생각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어 다른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이런즉 최면상태는 살림 중에서도 항용 맞닥뜨리게 된다. 사랑에 빠진 내외 커플은 서로에게 더없이 집중한 열매맺이 주변에서 하모 일이 일어나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되처 공부에 집중하면 옆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듣지 못하는 수가 있다.

천재 물리학자로 알려진 이휘소 박사의 경우에도 책을 읽을 케이스 잘 옆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것 같은 소리가 나도 꼼짝하지 않을 만치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고 한다. 하물며 경계 유형 일에 집중하는 것이 어서 최면상태다.

최면상태에 들어가면 자율신경의 활동이 감소하는데, 이녁 중에서도 교감신경의 활동이 감소한다. 교감신경은 대강 몸의 근육을 수축시키고 긴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교감신경의 활동이 감소하는 최면상태에서는 몸이 이완되어 혈압, 심장박동수, 호흡수, 대사속도 등이 감소된다. 마침내 잠을 자는 것처럼 여겨졌을 수도 있다.

최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종단 1955년 영국의학협회는 ‘최면은 의료상 중요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금 미국의학협회도 1958년 ‘유효한 치료수단’이라며 최면술을 공식의료기술로 인정했다. 지난 1996년 미국 국립보건연구소(NIH)는 최면이 암을 비롯한 여러 질환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데 유효한 수단이라고 판정하기도 했다.

도리어 그렇다고 해서 최면의 메커니즘이 아주 밝혀진 것은 아니다. 최면상태를 의식적으로 유도해내는 최면술과 잠재의식의 세계는 아직껏 세부적인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미완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다시 최면상태에서 끄집어낸 기억이 거짓인 경우도 많다. 그렇게 최면수사로 이끌어낸 정황은 어디까지나 수사에 참고가 될 뿐이지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한다. 남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989년 실질상 미국에서 있었던 에일린 플랭크린 사건이다. 가정주부였던 에일린은 우연히 어린 시절의 일을 기억해냈다. 지난 20년 간극 한계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기억이 난데없이 현실처럼 생생하게 펼쳐진 것이다. 다른 한편 군 기억은 소변 끔찍했다. 의붓아버지가 자신의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똑바로 떠올랐던 것이다.

증거는 없었지만 그녀의 의붓아버지는 삽시간 기소되어 살인죄를 선고받았다. 그녀의 기억이 당시의 사건기록과 하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자칫 조용히 묻힐 뻔했던 그편 사건의 진실은 워싱턴대학의 인지심리학자인 로푸터스 교수에 의해 밝혀졌다. 로푸터스 교수는 최면치료를 받고 있던 에일린의 기억이 제때제때 매스컴의 적바림 내용을 보고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위작품 기억이라는 증거를 제시했다.

환상이나 거짓기억이 좀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명 있는지 온전히 보여준 사건이다. 그리하여 최면수사를 동원해도 스타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가 하면 하지만 거짓기억으로 수사에 혼선만 빚게 될 우려도 있다.

하나 최면은 깊이깊이 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세히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최면에 걸리지 않는 경우를 보고 최면을 거는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또 최면술 자체를 의심하기도 했다.

반면 최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최면에 걸리는 정도는 개인의 감수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최면 감수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최면에 그만 걸리고, 낮은 사람은 장상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예인 중에는 최면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 많다. 반면에 판사나 검사, 경관 등은 최면 감수성이 더없이 낮다. 이런 사람들은 직업적으로 요것조것 따져보고 상대를 의심하고 분석해야 오뉴월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육 수준이 떨어지거나 자의식이 약한 사람이 최면에 주야장천 걸린다고 생각해서는 규실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능이 높고 감수성이 예민할수록 최면에 자주 걸린다. 미국에서 하버드대학에 다니는 학생과 군인들을 대상으로 비교한 결과, 하버드생들이 썩 최면에 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http://www.sciencetimes.co.kr/?news=신비한-최면의-세계